태백산 장군의 수호령 아래
신령함이 깃든 곳

100대 명산을 하나하나 오르며 쉰여섯 개의 산 이름을 지웠다는 지인이 “겨울이다 가기 전에 우리 모두 태백산에 한 번 가자.”고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덕산기에 사는 사람이기에 웃으며 물었다. “산속에 살면서 또 산을 찾아가요? 앞산에 올라가면 되지.” 그 사람도 웃으며 말했다. “눈 내리면 태백산에 가고 싶어요.”
눈 내리는 산속이라니. 눈길을 오르는 산행은 쉽지 않지만 겨울 풍경이 절경인 태백산은 기꺼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마음의 끌림이다. 옛날 세상을 지어 다스리시는 백두천황 역시 많은 산 중에서도 태백산을 특별히 사랑했다. 신의 마음을 얻은 태백산은 신성한 장소였기에 잡귀들도 호시탐탐 노리는 곳이었다. 이를 근심한 백두천황은 믿음직한 장군을 불러 태백산으로 내려보내며 엄히 명령하였다.
“내가 아끼는 산이니 너는 한시도 게을리하지 말고 잘 지키도록 하라!”
“명 받들겠습니다!”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태백산에 내려와 보니 과연 신령스럽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장군은 잘 때도 긴 칼을 옆에 두고 태백산을 지켰다. 장군이 온 이후로 부정한 사람은 태백산에 오를 수 없었고, 잡귀들은 태백산에 얼씬도 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잡귀들은 날마다 모여서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장군을 원망했다.
“저 녀석이 온 뒤로 태백산 정기를 받지 못해 기운이 없어. 저놈만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구석에 있던 잡귀 하나가 말했다,
“내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는데.”
“좋은 생각이라니?”
잡귀들이 눈을 빛내며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런 우직한 놈일수록 여자에게 약하거든.”

태백산 장군,
옥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어느 따뜻한 봄날, 비단병풍에 꽃수 놓이듯 태백산에 철쭉이 피어났다. 세상 만물이 평화롭고 충만했다. 장군 역시 모처럼 평화로운 마음으로 한가롭게 주목나무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 장군 눈에 아리따운 여인이 보였다. 여인은 비녀를 풀어 입에 물고 긴 머리로 몸을 반쯤 가린 채 연당지 안에 서 있었다. 장군은 얼른 돌아섰지만 가슴이 쿵쿵 뛰었다. 뒤따르던 부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여인이 누구냐?”
“네, 장군. 연화산 옥녀라고 합니다.”
다음 날 장군은 연화산을 슬쩍 돌아보았다. 멀리서 본 연화산은 연꽃이 활짝 만개한 모습과 사뭇 닮아 있었다. 그 모습이 옥녀와 딱 어울리는 산이었다.
옥녀를 보자 장군의 가슴은 다시금 뛰기 시작했다. 장군은 옥녀에게 이끌려 그만 자기도 모르게 연화산으로 훌쩍 넘어가고 말았다. 가는 길에 활짝 핀 철쭉도 꺾어갔다. 그가 태백산을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 간에 타오르는 사랑을 어찌 막을까.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봄부터 주목나무에 빨간 구슬이 다닥다닥 달리는 가을까지 장군과 옥녀는 사랑이 주는 기쁨을 한껏 누렸다. 그 이후 철쭉의 꽃말을 ‘사랑의 기쁨’이라 했다 하니, 둘의 사랑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운명의 그날은 태백산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천제단에서 하늘에 제를 올리는 날, 장군도 그날만큼은 태백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깐 얼굴만 보고 오겠다는 생각에 연화산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제가 시작되어도 장군은 돌아오지 않았다. 장군이 없는 틈을 타 잡귀들은 자기 세상을 만난 듯 신나게 떠들어댔다.
“와하하, 이제야 살겠다.”
“그러게 말이야. 그런 놈은 여자와 놀라고 하고 태백산은 우리가 접수하자.”
그때였다. 번개가 번쩍 내리치고 천둥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백두천황이 천제단에 나타났다.
“태백을 지키라고 보낸 장군은 어디 있느냐?”
군사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신령한 이곳에 어찌하여 잡귀들이 들끓는다 말이냐?”
크게 노한 백두천황은 잡귀들에게 벼락을 내리쳤다. 천둥 벼락 소리에 놀라 허둥지둥 태백산으로 돌아오던 장군은 뇌성벽력과 함께 벼락에 맞아 그만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장군이 돌이 되어버리자, 그의 곁에 있던 태백산 주목나무도 그와 함께 생명을 잃은 채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입적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도
생에 한 번쯤은 사랑이 주는 기쁨을 온몸으로 느꼈을 장군이 부럽지 아니한가.
눈이 녹기 전에 태백산에 한 번 올라 장군을 만나볼 일이다.


한 시절 사랑의 증거처럼 남은
장군바위

졸지에 사랑을 잃은 옥녀는 지고지순하게 지조를 지켰을까? 일설에 의하면 40주야를 쉬지 않고 내리는 비에 온 천지가 잠겼을 때 연화산 꼭대기에 있던 옥녀는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 비를 피해 통리 유령산(우보산) 꼭대기 갈미봉에 오르던 그 남자는 비에 젖은 옥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자 두 사람은 자석처럼 이끌려 불같이 사랑했고 자손들을 낳아 세상을 다시 사람으로 채웠다. 우두커니 서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야만했던 장군바위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사랑했던 여인이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는 행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랑의 완성은 상대의 행복이니까.
태백산을 오르게 되면 소도 당골, 넓적바위를 지나 500여 미터쯤 지난 곳에 우뚝선 장군바위를 꼭 찾아보기 바란다. 비록 사랑에 눈이 멀어 태백산을 수호해야했던 임무를 저버린 죄로 벌을 받고는 있지만 장군바위는 여전히 태백산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서 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도 생에 한 번쯤은 사랑이 주는 기쁨을 온몸으로 느꼈을 장군이 부럽지 아니한가. 눈이 녹기 전에 태백산에 한 번 올라장군을 만나볼 일이다.

유진아 작가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로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동화작가로 등단했으며 <아라리 할아버지>로 제1회 정선아리랑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강기희 작가와 함께 정선 덕산기 계곡에서 숲속책방 ‘나와 나타샤와 책 읽는 고양이’를 운영하며 산행하는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있다.
INFORMATION 태백산 장군봉
위치_ 강원도 태백시 혈동 태백산
가는 길_ 유일사 매표소를 시작점으로 하는 태백산 1코스(유일사 매표소~유일사 쉼터~장군봉~천제단)로 장군봉에 이를 수 있다. 태백산은 산 정상의 고산식물과 주목 군락, 4월 초순에 피는 철쭉으로 유명하다.
문의_ 033-550-0000 (태백산국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