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 공검초등학교 2학년 김진순이 쓴 시가 있다. 시 제목은〈눈〉이다

눈이 많이 오니 / 서로 니찔라고 해서 / 또 어떤 거는 너 먼저 니쪄 / 어떤 거는 안 죽을라고 / 땅에 떨어지면 죽는다고 너 먼저 니쪄 / 하고 다른 거를 막 떠다밉니다. / 그래 다른 거는 뚝 떨어지니까 / 소르르 녹으면서 아이구 나 죽네 / 합니다. (1958년 12월 27일)


여기서 ‘니쪄’는 ‘떨어져’ 하는 말이다. 이 시를 보면 김진순은 눈이 땅에 내려 ‘소르르’ 녹는 것을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눈은 소르르 녹으면서도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이기 마련이다.
눈 밟는 소리를 문학 작품에서 찾아보면 ‘뽀득뽀득, 뽀드득 뽀드득, 사각사각’이라 써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늉말은 ‘뽀드득 뽀드득’이다. 그런데 쌓인 눈을 밟아 보면 그날 날씨에 따라, 쌓인 눈의 양에 따라, 길바닥에 따라 다르다. 눈이 살짝 얼어 있으면 빠사삭 빠사삭, 사사각 사사각, 사바박 사바박 하는 소리가 나고, 도로 위 눈을 밟으면 오쇼속 오쇼속, 으드득 으드득 하는 소리가 난다. 물론 이 시늉말은 내 귀에 그렇다는 말이다.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과 상태에 따라 저마다 달리 들리기 마련이다. 시냇물은 웬만해서는 졸졸졸 흐르지 않고, 참새는 언제나 짹짹짹 울지 않는다. 맴맴맴 우는 매미도 없다. 참매미가 이렇게 울기는 하지만 들어보면 ‘맴맴맴’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뿐이 아니다. 꾀꼬리는 꾀꼴꾀꼴, 소쩍새는 소쩍소쩍 울지 않는다. 물론 개는 멍멍멍 짖지 않는다. 딱 정해진, 어떤 게 꼭 옳다는 기준은 없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귀에 들리는 소리를 정확히 붙잡아 쓰려는 노력은 해야 할 것 같다.

시조 시인 조운(曺雲 1900∼?)이 쓴〈×月 ×日〉이 있다.

언 눈 밟히는 소리 / 좋아라고 딛는 듯이 // 고개를 수구리고 / 빠스각 빠스스각 // 들 밖에 다 나와서야 / 도로 돌쳐 걸었다


이 시는 초장 첫 구절을 따 ‘언 눈 밟히는 소리’로 알려져 있다. 겨울밤 눈이 쌓이고 그 뒷날 살짝 녹고 난 뒤 밤새 얼었을 때 아침 일찍 들에 나가 언 눈을 밟으면서 쓴 시다. 이때 소리는 빠드득 빠드득 하는 소리가 아니고, 정말 ‘빠스각 빠스스각’ 하는 소리가 난다. 언 눈이 부서지면서 나는 소리다. 그는 이 소리가 재미있어 들 밖에 나왔다가 다시 돌아(돌쳐) 언 눈을 밟는다.
1975년 한수산이 동아일보에 발표한 단편소설 〈年末의 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윤이와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언 눈이 밟히는 소리만이 뽀드득거렸다” 한수산은 언 눈 밟히는 소리를 ‘뽀드득거렸다’고 쓰지만 역시 언 눈은 부서지는 소리가 나야 제격이다. 언 눈 밟히는 소리를 조운처럼 살아있게 쓴 것을 이 시 말고는 다른 시나 소설에서 본 적이 없다.

조운은 첫눈을 ‘사비약눈’이라 한다.

컴컴한 하늘에서 / 쑥쑥 빠지는 사비약눈


〈×月 ×日〉(컴컴한 하늘)의 초장이다. ‘사비약눈’은 한잎 두잎 살살살(사비사비) 내리는 ‘첫눈’을 말한다. 그런데 이 눈이 컴컴한 밤에 떨어진다. 가로등 아래에서 보면 이 눈은 마치 밤하늘에서 어린아이 이가 ‘빠지듯’ 쑤욱 쑤욱 나린다. 이때 바람은 없어야 한다.


소리로 감상하는 눈 풍경 (설피 신고 눈 밟는 소리 / 출처:환경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
‘빠스각 빠스스각’, ‘뽀드득 뽀드득’, ‘빠사삭 빠사삭’, ‘사사각 사사각’ ‘사바박 사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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